조선 수군은 갑옷을 입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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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수군은 갑옷을 입었을까? 느릅추천 0 조회 839 리플 4글번호 2305385 | 2015-04-18 23:18 IP 58.233.*.180 사관은 논한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에서 군관급 아래 일반 수졸들이 갑옷을 어느 정도 비율로 입었을까? 임란 5년 전인 1587년 3월 2일 정해왜변 직후에 경상도 암행어사 이정립이 ‘병력은 출동준비를 갖췄고 궁시, 총통도 확보했고 철갑과 철환이 부족하나 현재 만들고 있다’고 보고하는 실록 기사도 있고, 조선 전후기를 통틀어 두정갑 등 갑옷을 대량으로 제작한 기록이 종종 나오니 임란 당시 장수나 군관이 아닌 일반 수졸들도 상당수가 갑옷을 입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와 명백히 상반되게 예나 지금이나 조선 군사들은 갑옷을 거의 입지 않는다는 실록 기사도 있으니 조선 수군이 100% 갑옷을 입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또한 임란 당시 전투가 아닌 조선 후기 수군의 훈련 상황을 그린 삼도수군조련전진도를 보면 상장의 전투원이나 하갑판의 격군이나 관계없이 대부분 장수와 병사들이 갑옷을 입지 않은 것으로 명백히 판별된다. 그런데 조선 후기 전선 1척과 사후선 1척을 운영했을 당시에 작성된 함평현 읍지에서 <수군기물 목록>에는 함평현이 수군용으로 철갑과 투구 50벌씩을 보유했다고 적혀 있다. <영암읍지> 진보鎭堡 편에는 당시 영암현 관할구역에 위치한 이진진과 어란진에 각각 철갑과 철 투구 47벌씩 비치돼 있다고 기록됐다. 어란만호진은 전선 1척, 병선 1척, 사후선 2척을 운영하고, 이진만호진은 여기에 방선 1척이 더해졌는데도 철갑과 투구 보유량은 함평현보다 오히려 더 적다. 그런데 어란진은 피갑주皮甲冑, 즉 가죽찰갑으로 만든 갑옷과 투구 20벌을 추가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진도군은 전선 1척, 병선 1척, 사후선 2척을 운영했는데 철갑과 철 투구 69벌에 종이로 만든 엄두, 엄심갑 각 4벌을 보유했다. 철갑 47벌에서 69벌이라면 판옥선 상장에서 전투를 수행하는 수졸이나 병선 등 소형 함선,...

조선군 졸병의 무장 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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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군 졸병의 무장 여부 첨부된 사진이 잘 안 보이면 네이버 블로그로 보세요. 네이버 블로그 링크 : https://blog.naver.com/b3526/223171774751 https://namu.wiki/w/%EC%A1%B0%EC%84%A0/%EC%98%A4%ED%95%B4 ==== https://youtu.be/aJpgxF5GXeQ 논쟁 요약 : kch6785는 조선이 일본보다 철기 기술과 철 생산량을 압도했으며 조선군은 개나 소나 철갑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를 증명할 사료들이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제시한건 나무위키가 다였다. 물론 나무위키에는 KCH의 입장을 증명하는듯한 사료들이 있는듯했으나 이는 학계의 철저한 사료 비판을 거치지않은 인터넷 네티즌들의 자의적인 사료 해석에 불과했다. 더욱이 KCH는 난중일기 사료를 근거로 조선 수군은 개나 소나 철갑을 입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난중일기 사료의 '갑옷'이란 부분이 가죽갑옷인지 철갑옷인지 명확하지않고 설령 철갑옷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장교용인지 병사용인지 확실하지않다. 게다가 프로이스일본사를 보면 부산진성 수비군은 전부 철모랑 검은 가죽갑옷을 입고있었다고 적고있기 때문에 과연 졸병이 개나 소나 철갑옷을 입었는지는 깊은 의문이 든다. 게다가 비변사등록, 효종 1년 4월 사료를 보면 이순신 시절에도 수군 졸병이 '갑주'를 입고 승선한 일이 없다고 나온다. KCH는 최후의 발악으로 수군 90명이 전부 철갑옷을 입었다는게 실록에 나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건 실록이 아니라 '승정원일기 국역비변사등록 13책  >   인조 27년 3월 '의 기록이다.  해당 기록을 보면 군함에 승선한 인원 전원에게 철갑옷 입혀야하지만 읍들의 재정이 딸려서 안된다. 장교에게만 철갑옷 입히는게 좋지만 그것도 타당하지않으니 그냥 알아서하게하자 그리고 군함 90명에게 철갑옷 90벌 입히자는데. 노꾼 제외하면 40명인데 철갑옷 90벌이 말이 되냐? 라고 끝난다. 즉 KC...